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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화 《베감투를 쓴 고양이》
  어떤 마을에 고양이를 무척 사랑하는 농부가 살고있었습니다.
  농부는 어느날 밭에서 돌아오다가 어미 잃고 슬피우는 고양이새끼 한마리를 보았습니다.
  농부는 그 고양이새끼를 불쌍하게 여기고 자기 집에 데려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아침 저녁 접시에 밥과 반찬을 따로 떠서 상옆에 놓아주기도 하고 밤이면 따뜻한 아래목에 눕혀 잠재워주었습니다.
  고양이새끼는 주인의 따뜻한 보살핌속에서 야웅야웅 응석을 부리며 자라나 어느덧 큰 고양이가 되였습니다.
  귀가 발죽하고 눈알이 동그란 고양이는 쥐잡이도 잘하고 몹시 령리하였습니다. 그는 낮이면 집도 곧잘 지키여 늘 주인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해 가을이였습니다.
  고양이를 그렇게 사랑해주던 주인이 심한 병에 걸려 자리에 덜썩 눕게 되였습니다.
  용한 의사를 청해다가 침을 맞아도 소용없고 별의별 약을 다 써봐도 도무지 효험이 없었습니다.
  병세는 점점 더해가기만 하는데 하루는 어떤 의사가 《이 병엔 좋은 약이 없습니다. 단 한가지 약이 있긴 하나 얼른 구하기가 어려울것입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주인이 그 말을 듣더니 그게 대체 어떤 약인가고 따져물었습니다.
  의사는 병자의 마지막 소원이나 풀어주려고 어려운 약처방을 대주었습니다.
  《그건 해마다 땀흘려 농사지은 낟알을 축내는 쥐때문에 생긴 병이니 쥐 천마리를 잡아없애면 나을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그 많은 쥐를…》
  주인은 그 말을 듣고 《옳소이다. 그런데 쥐 천마리를…》 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온 마을에 호소해도 그렇게 많은 쥐를 도저히 잡아낼것 같지 못하였기때문이였습니다.
  주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게 고였다가 두볼로 쭈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옆에서 그 모양을 측은하게 지켜보던 고양이의 눈에도 그렁하게 눈물이 고였습니다.
  고양이는 병세가 기울어가는 주인의 가련한 정상을 더 보고만 있을수 없어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는 온 마을 고양이들을 찾아다니며 쥐를 잡을 의논도 해보고 굴뚝가장자리에 오도카니 앉아서 많은 쥐를 단번에 잡아낼 생각도 굴려보았습니다.
  이때 담장너머 웃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고양이는 그 소리를 들으니 어쩐지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글픈 마음으로 담장을 기웃이 넘겨다보았습니다. 많은 조객들이 찾아와 베감투를 쓴 상제들과 인사를 나누고있는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고양이의 머리에는 그럴듯한 생각이 피뜩 떠올랐습니다. 자기도 베감투를 쓰고 상제노릇을 해보자는것이였습니다.
  자기 집 말코지엔 주인이 제사지낼 때 쓰던 베감투 하나가 걸려있었습니다.
  고양이는 벽장을 타고 뽀르르 기여올라가 그 베감투를 벗겨내렸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머리에 쓰고 쥐구멍을 찾아가 쥐들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한참 있으려니까 쥐 한놈이 구멍속에서 대가리를 내밀다가 고양이를 보고 깜짝 놀라 다시 구멍속에 기여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고양이가 그놈을 보고 꾸짖어댔습니다.
  《요놈, 네 아무리 도적질을 일삼는 놈이기로서니 그렇게 례절마저 잊어먹었단 말이냐. 내 요즘 부모를 여의고 상을 당하고있는데 한놈도 나와 조상을 하지 않으니 천하에 그런 못된 버릇이 어데 있느냐. 분명 내가 부모를 잃은걸 깨고소해하는것 같은데 이제 두고봐라. 내가 친구들을 수십명 불러다가 례절도 모르는 네놈들의 씨종자를 말리고 말테다.》



  고양이가 노한 소리로 그놈한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쥐는 그 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구멍속에 들어가 여러 쥐들을 모여놓고 의논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조상을 가야겠어. 그러지 않다간 더 큰 화를 당할지 몰라.》
  《암, 조상이야 가야지. 제 아무리 악한놈이기로서니 조상을 갔는데 설마 해치기야 하겠니. 그럼 내가 먼저 나가 조상을 하며 거동을 살펴보고 올테다.》
  쥐들이 의논을 거듭하던 끝에 먼저 늙은 쥐 한마리가 굴밖으로 기여나왔습니다.
  늙은 쥐는 《애고 애고》 하며 곡을 하는 고양이앞에 넙적 엎디여 절을 하고나서 《우리가 무식해서 어른께서 상사 당하신것도 모르고 제때에 조상을 못했사오니 널리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습니다.
  고양이는 쥐는 잡아먹을 대신에 좋은 낯으로 조상을 받으며 대단히 고맙다고 그를 칭찬하여 돌려보냈습니다.
  그제야 쥐들은 안심하고 한두놈씩 차례로 나와서 《꺼이 꺼이》 하며 조상을 했습니다.
  고양이는 그때마다 좋은 낯으로 인사를 받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두 조상을 해줘서 고맙소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수가 많고 나는 혼자이므로 일일이 답례하기 힘들구만요. 좀 실례의 말씀인지는 모르겠으나 여러분네 족속들이 모두 한꺼번에 나와 조상해주셨으면 고맙겠소이다.》
  그러면서 고양이는 아무날 아무때에 넓은 마당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쥐들은 그것이 편하고 좋을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고양이와 약속한 쥐들은 곧 온 동네 쥐들과 지어 들쥐, 산쥐들한테까지 일일이 통문을 띄워 약속한 날자에 넓은 마당앞에 모이기로 했습니다.
  드디여 약속한 날이 돌아왔습니다.
  고양이가 베감투를 쓰고 서있는 마당앞으로 쥐떼들이 까맣게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고양이는 미리 친구고양이 수십마리를 불러다가 보이지 않는곳에 숨겨두고 쥐들이 다 모인 다음에 나가 족치게 했습니다.
  베감투를 쓴 고양이는 쥐들의 조상을 받으려고 그들의 한가운데 걸어나가 《애고 애고》 곡소리를 울리였습니다. 그러자 숨어있던 친구고양이들이 일시에 달려들어 모여온 쥐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물어제꼈습니다.
  마당앞에는 죽어너부러진 쥐들이 산더미를 이루었습니다. 얼핏 봐도 천마리가 넘는듯 했습니다.
  고양이는 그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집안에 들어가 주인집아주머니의 치마자락을 잡아당겼습니다.
  주인집아주머니가 괴이하게 생각하고 밖에 나가 보았더니 죽어너부러진 쥐들이 수천마리가 되였습니다.
  주인집아주머니는 너무 기뻐 이 희한한 일을 인차 주인한테 알렸습니다.
  도저히 일어날 가망이 없다던 주인은 그 소식을 듣고 씻은듯이 병이 나아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다시 일손을 잡게 되였습니다.
  동리사람들은 자기의 령리한 꾀로 주인의 은혜를 갚은 고양이를 의리있는 고양이라고 모두가 칭찬하였습니다.